역사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불매
1943년~1953년
■ 시련의 시대와 예언자적 결단
1940년대는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시련 속에서 일제의 식민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갖은 수탈로 가족이 해체되고 생계마저 막막해진 슬픈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성재덕 신부는 전사자와 부상자, 굶주리고 헐벗은 고아들이 생겨날 것을 예견하고 무엇보다 교회가 예수님의 인자한 얼굴이 되어 그들을 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수도회 창설 논의와 준비 당시 서울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와 갈멜 수녀회뿐이어서, 프랑스의 성모승천 수녀원(Assomption)처럼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활동 수녀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성 신부는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수도회 창설을 논의했습니다. 그는 백동(현 혜화동)에 자리를 마련한 뒤, 수도생활을 간절히 열망했으나 기존 수녀회 입회가 어려웠던 여성들을 모아 영적 지도를 시작했습니다.
■ '성가소비녀회'의 탄생 (1943년)
마침내 1943년 12월 25일 성탄 축일 미사 후, 백동성당 성모상 앞에서 김청자(루시아)와 김충순(바르바라) 두 지원자가 순명을 약속하며 '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가 탄생했습니다.
수도회 명칭은 성모 마리아의 응답("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과, 순교자 김 골롬바·아녜스 자매가 자신을 낮추어 부른 '소저(小姐)'라는 뜻을 담아 '작은 여종(소비녀·小婢女)'으로 정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세상에 내리셨다. 그러면 오늘 천주께서 신자를 통해 특히 수도자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내리신다. 우리 성가소비녀들이 할 일은 바로 예수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것이다." - 1943년 12월 25일 성탄 축일 미사 강론 중
■ 성가소비녀회의 영성과 설립자의 설립 정신
성가소비녀회의 영성은 인간을 구원하고자 온전히 당신을 비우시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강생의 영성입니다. 사회적 불의와 위기를 감지하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며 실천을 촉구했던 예언자들처럼, 성 신부는 참혹한 시대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고자 소비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성 신부의 이러한 예언자적 감각은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유럽 교회가 성직화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외면하다 민중의 공분을 샀던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 교훈과, 언제나 타인을 도우려 애썼던 부모님의 신앙적 삶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결과였습니다. 성 신부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오직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있음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 가난 속에서 살아낸 강생(降生)의 영성 전쟁의 시련 속에서 시작된 1944년의 공동생활은 먹고사는 일조차 버거웠지만, 수녀들은 더 가난한 이들을 품어 안았습니다. 배고픔 속에서도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강생의 영성을 온몸으로 기쁘게 살아낸 초창기 소비녀들을 축복하듯 하느님께서는 성가소비녀회를 조금씩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 회헌 제정
1945년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지도 수녀님들을 원장과 수련장으로 모시어 수도회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와 함께 아우구스티누스회 계통의 규칙서를 바탕으로 이재현(요셉) 신부와 함께 성가소비녀회의 회헌과 규칙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회헌은 1945년 7월 노기남 주교의 인준을 거쳐 1949년 2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습니다. 초기 회헌에는 가난함과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라는 성 신부님의 메시지가 깊게 담겨 있었습니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소비녀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소비녀들은 설립자의 뜻에 따라 울산 제23육군병원, 부산동래 제31정양원, 수도의대병원, 제3육군병원, 순아병원 등에 파견되어 부상병들을 간호하고 대세를 주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무의탁 어르신을 위한 성가양로원 1953년
성가양로원은 1900년 프랑스인 뽀아네(Poiner) 신부가 계성여고 구내에 노인 몇 명을 모시며 시작되었습니다.
1920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구내로 옮긴 후 장충동과 청량리로 이전하였고,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 윤을수 신부에게 위임되어 후암동과 동자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후 1953년 성가소비녀회가 이를 인수하여 58년에 부천시 원미동으로 이전하고 '성가양로원'으로 개칭하였으며, 갈 곳 없는 많은 노인들을 돌보고 섬기던 중 1996년 '성가요양원'으로 시설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합덕본당 (합덕보육원)
1947년 7월 21일, 충남 당진군 구 합덕본당으로 두 명의 첫 서약자 소비녀들이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주임을 맡고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백 패랭(Perrin) 신부는 일찍이 부모 없이 버려진 영아들을 신자 가정에서 돌보게 하며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아이들이 성장하자 육아원을 설립하였고, 소비녀들이 이들을 온전히 돌보았습니다.
1949년 1월에는 국가로부터 정식 보육원 설립 인가를 받아 '합덕보육원'을 설립하였으며, 소비녀들은 본당 소임을 겸하며 보육원의 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보았습니다.
■ 수원본당
소비녀들이 파견된 첫 사도직 현장으로는 합덕본당 외에도 수원본당이 있었으나 수원본당에서는 짧은 기간 소임을 했고, 이후 서울 도림동본당으로 세 소비녀가 파견되었습니다.
한국전쟁 후 정치·경제적 소용돌이 속에서 설립자 성재덕 신부가 논산 본당으로 부임하여 떠나있을 때에도, 수녀들은 기도와 합심으로 일치해 가며 방인 수도회로서 자립의 기틀을 다져나갔습니다.
그리하여 1953년 1월 11일,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다섯 명의 소비녀들이 혜화동 성당에서 종신서약을 하였습니다.
합심은 우리의 문장
1954년~1969년
나자렛 기술학원 1955년 ~
■ 미망인 원호 양재소 '미망인 원호 양재소'는 1950년 9·28 서울 수복 후 피난에서 돌아온 교우들이 중림동 약현성당을 재건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생계가 막막했던 미망인들을 돕기 위해 본당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재봉틀을 설치하고 원호 사업을 펼쳤습니다.
1955년부터 소비녀들이 파견되어 전쟁미망인들에게 양재 기술을 가르쳤으며, 1959년에 성가소비녀회가 정식으로 인수받았습니다. 이들은 재봉과 손바느질로 제의와 수단, 학생복, 유치원복 등을 주문받아 납품하며 자립의 기틀을 다져나갔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도움으로 동자동 기숙사와 성요셉아파트에 숙소를 마련하였습니다. 1978년 5월 부천으로 이전하였다가 1980년 8월 25일 운영을 마감하였습니다.
■ 나자렛 기술학원 또한 기술을 배우기 원하는 가난한 처녀들에게 직업교육을 하기 위하여, 가톨릭구제회의 도움을 받아 1958년 서울 동자동에 나자렛 기술학원을 개원하여 편물과 양재를 가르쳤습니다.
당시 미아리 성당(현 길음성당) 박일규 신부가 교리실을 선뜻 내어주었고, 1958년 8월 5일 의사 1명과 소비녀 2명이 '성가의원'을 열며 병원 사업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1959년 성당 옆 대지를 구입해 1962년 '성가병원'을 완공하였으며, 가톨릭의대 부속병원으로서 30개 병상과 30명의 의료진을 갖추고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하였습니다.
성가소비녀회는 이곳에 10명의 소비녀를 파견하여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이들에게 더 많은 의료 혜택을 제공하였습니다.
여학생 교육을 위한 소명여중·고 1962년
이후 1970년 지역 여건에 맞춰 '상과', '관광과', '간호과'를 둔 종합고등학교로 개편하였고, 1980년 다시 소명여자중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부천 지역 유일의 가톨릭 학교로서 지역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29년 동안 2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발전해 온 소명여자중고등학교는, 수도회의 고유 사도직 전환과 기도·식별을 거쳐 1993년 2월 13일 인천교구로 무상 증여되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경축 미사가 거행되었으며,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내외빈이 참석하여 설립 25주년을축하하였습니다. 이어서 설립자 성재덕 베드로 신부의 내빈 축사와 함께, 200여 명의 소비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도회의 발자취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날 행사와 함께 지난 역사를 기록한 《성가소비녀회 25주년 기념집》이 발행되어 수도회 설립 25주년의 기쁨과 의미를 나누었습니다.
보금자리 성가보육원 1954년
1954년 중림동 성요셉 자선병원을 증축함에 따라 안 제오르지오 주교와 신성우 신부의 도움을 받아 부천 소사읍(구 성가병원 자리, 현 부천성모병원)으로 이전하여 정착하였습니다.
이후 1978년 국가 행정 시책에 따라 폐쇄되기 전까지 500여 명에 달하는 전쟁고아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김 사베리오 수녀는 1956년부터 1966년까지 미아리 본당에서 전교하며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했고, 1966년 11월부터는 본원에서 정식으로 개별 방문 사도직을 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그때부터 1979년까지 양친회를 통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고, 산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필요한 옷과 약을 구해주었습니다. 또한 아픈 이들에게 대세를 주고 임종하는 이의 곁을 지키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이웃 사랑의 봉사는 이후 30년 동안 지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본원 내 옛 사제관을 유치원으로 개조해 두 학급으로 시작하였으며, 1961년 정식 인가를 받아 25년 동안 26회에 걸쳐 1,8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1985년 폐원하기까지 유치원 아이들과 가정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63년부터 진행된 건물 공사에는 미군 508부대의 도움으로 벽돌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녀들은 기도와 희생 속에 벽돌을 손수레로 나르며 한 층씩 건물을 올려지었습니다.
1966년 본관 1층이 완공되었고, 수도회 설립 25주년을 맞은 1968년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본원 건물이 완성되었습니다. 1968년 8월 31일 혜화동 본원을 정릉(현 길음동 총원)으로 이전하였으며, 1969년 1월 10일 설립 25주년 기념식과 함께 낙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사도직 확장과 성장
1970년대~1980년대
신축 이전한 서울성가병원 축성 1970년
새로 개원한 《성가병원》은 건평 1,800평, 지하 1층·지상 9층 규모에 120개 병상과 10개 진료과를 갖춘 종합병원으로서 지역 의료봉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후 1983년 부천으로 《성가병원》을 이전하였으며, 월곡동 건물은 1985년 재매입해 운영하다가 1990년 7월 12일 '성가복지병원'으로 전환하여 지금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 사도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무의탁 어르신을 위한 안나의집 개원 1977년
특히 완공을 위해 전 회원이 1년 동안 휴가를 중단하고 기도와 절약으로 정성을 모았을 만큼 소중하게 마련된 역사 깊은 보금자리입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길음안나의집'은 "어르신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예수님"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이어받아,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가족처럼 정성껏 모시며 따뜻하고 행복한 마지막 뜨락이 되어드리고 있습니다.
교포사목을 시작으로 해외 선교
사도직 진출 1982년
성가소비녀회는 해외 교포 사목을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 한인성당에 분원을 신설하고, 1982년 두 명의 소비녀를 미국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아르헨티나의 '알바레스 병원' 원목과 차코 공소·양로원, 이탈리아 피렌체 교구의 '엠폴리 미세리콜디아', 중국 목단강 '안나의 집'과 형주시 팔령산의 나환우촌 등에 회원을 파견하며 해외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 입교자가 늘어나고 본당 설립이 급증하면서 수도자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성가소비녀회는 교회의 필요를 깊이 인식하고 1970년 대전 문창동을 시작으로 본당 사도직을 적극 확대하며 한국 교회와 함께 성장해 나갔습니다.
70~80년대 신설된 본당은 37개에 달하고, 특히 서울 연희동, 가좌동, 역촌동, 서초동, 양재동 등의 큰 본당으로 수도자 파견이 확대되었습니다.
손뜨개질 등을 가르치며 친근하게 다가간 이 활동은,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던 젊은 이들에게 정서적 위안과 따뜻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습니다.
보건진료소 1982년 ~
■ 곡수보건진료소 경기도 양평군 곡수리의 '곡수 보건진료소'는 당시 보건사회부 시책에 따라, 의료 이용이 어려운 무의촌 지역에 자격을 갖춘 소비녀를 파견하여 의료봉사를 펼치며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보건진료소 소임이 종료된 후에도 소비녀들은 곡수 공소에 머물며 마을 주민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삶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마지리보건진료소 1984년에는 평창 마지리에 보건진료소를 열고 무의촌 진료를 활발하게 펼쳤으나, 이후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되고 오지에도 일반 진료원이 들어가면서 1988년 3월 2일에 운영을 마감했습니다.
열정과 식별의 시기
1990년대
개원 1990년
80년대 말, 교회가 방인 수도회를 대상으로 진행한 식별 세미나의 주제와 강의 내용은 초창기 설립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수도회 쇄신의 열망에 불을 붙였습니다.
소비녀들은 바로 움직였고 기도했고 함께 모여 식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수도회 안팎으로 우려와 걱정과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었지만, 성령의 바람은 회원들의 마음을 일치로 이끌어, 월곡동에 있던 서울성가병원을 무료 병원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0년 7월 성가복지병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이후 각계각층의 후원금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행려자와 극빈자들에게 의료 복지를 통한 사랑의 기적을 나누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최근엔 의료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차상위 계층과 이주민들로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인천교구에 소명여중·고
무상양도 1993년 2월 13일
1990년대에 이르러 성가소비녀회는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고유 정신에 따른 식별을 통해 사도직을 재정립하였고, 그 결과 1993년 2월 13일 소명여자중고등학교를 천주교 인천교구에 무상 양도하였습니다.
아람동산 ·
밀알재활원 등 장애인복지
사도직 시작 1990년대
1990년대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장애인 복지 수요가 커짐에 따라, 한국의 많은 수도회들이 장애인·노인·지역사회 복지 분야로 사도직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성가소비녀회 또한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여 장애인 복지 시설과 공동생활가정에 회원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소비녀들은 살레시오의 집(원주교구), 아람동산(부천시 장애인종합복지관), 밀알재활원(춘천교구) 등에서 장애인들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헌신하며, 이들의 존엄한 삶과 자립을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비록 이후 시대적 요구와 여건의 변화에 따라 장애인 복지 사도직에서는 철수하게 되었으나, 소비녀들이 보여준 사랑과 봉사의 정신은 오늘날 다른 다양한 사도직 현장에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 신부 선종 1992년 2월 26일
성가소비녀회 설립자 성재덕 신부는 1992년 2월 26일 향년 82세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지상에서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교지인 한국과 한국인들을 깊이 사랑하였으며, 특히 자신이 설립한 성가소비녀회를 마음 깊이 아꼈습니다. 성재덕 신부에게서 샘솟은 이 사랑의 물줄기는 성가소비녀들에게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50주년 1993년 12월 25일
성가소비녀회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이틀간 기념행사를 거행하며 수도회의 설립 정신과 소비녀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하였습니다.
첫째 날인 10월 3일 '소비녀의 날'에는 설립지인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초창기 수도생활과 고유 사도직》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어, 설립 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걸어온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았습니다.
둘째 날인 '감사의 날'에는 故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렸고, 이어진 '소비녀 축제'를 통해 회원들과 신비체 가족들이 친교를 나누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였습니다.
강생의 소비녀 변방으로
2000년대
함께 하는 요셉공동체 (5개) 2001년
2000년대에 이르러 성가소비녀회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여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사도직으로 강생의 영성을 구현하고자 2001년 5개의 요셉공동체를 신설하였습니다.
노동자의 주보이신 성 요셉의 이름을 딴 요셉공동체는 도시 빈민가, 공장 지대, 농촌 지역 안에서 살아가며 복음에 비추어 시대의 표징을 읽고 현장성 강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하였습니다.
📌 [5개 요셉공동체]
• 비아 요셉공동체(광주): 무보수 본당 활동 및 공장 노동으로 경제적 자립
• 삼정 요셉공동체(부천): 본당 사목, 재가 방문, 노동 현장 사목
• 성북 요셉공동체(서울):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 줄포 요셉공동체(전북): 농촌 지역에서 본당 활동, 재가 복지, 노동 현장 사도직 활동
• 송파 요셉공동체(서울): 빈민 사도직
이곳에 파견된 소비녀들은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지역에서 노동의 가치와 강생의 예언적 삶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중심으로 본당 사도직 식별 2003년 ~ 2006년
1970년대 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과 함께 본당 사도직이 확대되면서 수도자들이 본당 활동에 집중하게 되자, 수도자적 정체성과 소공동체 생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소비녀들은 본당 사도직 안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찾아 고유 카리스마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뒤이어 1990년대, 수도회 총회에서 본당 사도직 식별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수도회는 단계적인 식별을 거쳐 사도직 전환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가난하게 살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설립 영감을 되살리고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대형본당 중심으로 서울·부산·인천·수원교구의 총 11개 사도직을 철수하였으며 이후로도 사도직 식별을 지속해 나갔습니다.
식별 서울대교구에 무상양도 2007년 2월 13일
성가소비녀회는 1950년 6·25 전쟁 직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던 가난하고 무의무탁한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1958년 서울 미아동에 성가의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이후 1970년 서울 월곡동, 1983년 경기도 부천으로 성가병원을 이전 및 확장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2000년대에 이르러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수도회는 병원의 미래와 카리스마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2001년부터 전 회원과 함께 식별을 시작하였습니다. 3년간의 다각적인 연구 끝에 성가병원을 학교법인 가톨릭학원(CMC)에 무상양도하고 수도자들은 파견 근무 형태로 의료 사도직을 이어나가기로 결정, 2007년 2월 13일 양도를 최종 완료하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소비녀들의 큰 수도원, 큰 사업의 욕심 원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작은 여종, 소비녀가 되길 바라셨던 설립자 신부님의 뜻을 따른 이 결단처럼, 성가소비녀회의 역사는 설립 카리스마로 되돌아가기 위해 시대의 가장 가난한 자리를 찾아 식별해 온 역사였습니다.
캄보디아 등 해외 선교 사도직
확장 2009년
2009년부터 성가소비녀회의 해외 선교는 기존 남미와 아시아 진출국인 아르헨티나와 중국을 넘어 필리핀, 볼리비아, 베트남, 캄보디아로 지평을 넓히며 활동 영역을 다변화하였습니다.
나아가 선교지의 가난한 이들과 강생의 영성을 나누고 현지 교회 안에 뿌리내려 함께 성장하고자 현지 수도자 양성과 공동체의 주체적 성장에 주력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바탕으로 현지 주민들과 삶을 나누는 동반자적 선교를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평신도 협력단체 예수·마리아·요셉회 설립 2003년
'예수 마리아 요셉회(JMJ회)'는 성가소비녀회의 평신도 협력단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강조된 평신도 사도직과 복음화 사명의 흐름 속에서,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평신도와 나누고 이를 삶 안에서 구현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초기 수도회 협력단체로 시작하여 성장해 온 '예수 마리아 요셉회'는 운영과 양성의 중심이 수도자에서 회원으로 이동하고, 회원들의 참여와 책임이 확대되면서 자율적인 공동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성가소비녀회와 상호 협력하며 공동 사명을 함께 식별·수행하고 있으며, 개인적 신앙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와 생태적 삶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며 수도회와 평신도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정분원·
덕정성가누리 이주민 사도직
시작 2005년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함께 1990년대 이후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성가소비녀회는 언어·문화·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을 위한 사도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2005년 부천 삼정동에 이주민 가정 유아를 돌보는 '별사랑 어린이집'과 '별사랑 이주민센터'를 개소하여 한국어 교육과 의료·상담을 지원했으며, 양주 덕정에는 '덕정 성가 다문화센터(현 덕정 성가누리)'를 설립하여 한글 지도, 여성 요리 강습, 다문화 가정 아동의 학습 지도를 활발히 펼쳤습니다.
나아가 성경 속 가난한 이들의 안식처였던 '베타니아'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 취약 계층인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광적, 덕정,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지에 '베타니아' 거점을 마련하여 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확장되는 공동체 2008년 12월 28일
1943년 설립 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강생의 영성을 실현해 온 성가소비녀회는 2000년대 들어 회원 수가 400여 명에 이르러 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욱 낮고 소외된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적 쇄신이 필요해졌습니다.
수도회는 설립 영감을 일깨우고 카리스마를 제대로 구현하고자, 2003년부터 6년간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관구 설립을 위한 다각적인 연구와 준비를 거쳤으며, 2007년 제14차 정기총회에서 관구 제도를 선택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 [제14차 총회 - 2007년]
• 주제: "소비녀들, 비우고 가시오. 그리고 기쁘게 사시오."
• 주요 의제:
1. 강생의 영성을 구체적인 삶으로 증거하여 기뻐하는 소비녀의 소명에 응답한다.
2. 관구 제도를 선택한다.
그 결실로 2008년 12월 28일 의정부관구(본원: 양주 우고리)와 인천관구(본원: 부천 소사동)를 설립하고 서울에 총원을 두었습니다. 총원과 두 관구는 관구 설립 취지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고 강생의 영성을 세상과 나누며, 회원과 공동체가 쇄신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고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였습니다.
경계를 넘어 우주적 연대로,
생명의 그물망을 이어가는 강생
2010년~2020년대
해고노동자 · 세월호
희생자들과 함께 세상의 아픔과
연대 2013년
📌 [제15차 총회 - 2013년] • 주제: "주님의 영이 우리를 다그치신다. 세상의 절박한 곳으로!" • 결정된 의안: 하느님 창조질서 회복 – 강생의 예언적 사명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성가소비녀회는 2013년 제15차 총회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시혜를 베풀던 전통적인 자선의 틀을 넘어, 사회적 불의와 구조적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시대적 인식에 깊이 공감하며 사명의 지평을 넓혀갈 것을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주님의 영이 다그치는 절박한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며 정의·평화·생명이 위협받는 현장에 직접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탈핵 운동, 해고노동자 현장,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등과 함께하며 고통을 겪는 이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며 강생의 예언자적 소명을 살아가기 위해,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들과의 동반과 연대를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그치는 곳으로 거리청소년 아웃리치 ·
쉼터 · 무료밥집 등 2015년
2015년 거리청소년 아웃리치 사도직을 시작하여 위기 청소년들의 상담·의료·기관 연계와 더불어 법적 문제 발생시 동행을 이어왔으며, 여자 청소년 쉼터 '활짝'을 통해 치유와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또한 1998년부터 시작된 성가복지병원의 무료급식을 비롯해 하상바오로의 집, 서동 분원 무료급식 지원, 2020년 안산에 개소한 '소비녀 밥꽃'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나누는 환대와 동반의 사도직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지역조직ㆍ기후행동 2020년
성가소비녀회는 제16차 총회의 정신을 한층 더 심화하고자, 2020년 제17차 총회에서 '통합 생태적 삶으로의 대전환'을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대전환을 통해 실제적인 강생의 정신을 살아가고자, 회원 간의 깊은 공감대와 지역사회와의 끈끈한 연대로 생명의 그물망을 짜나가는 '지역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전환의 출발점인 내적 회심을 이루고자 지역 모임을 중심으로 한 생태적 교육을 진행하고, 지역선언문과 실천사항을 정하였습니다.
나아가 기후위기 문제를 심도 있게 바라보고 그 배움을 삶에 적용하는 생태인문학 스터디를 전개하였으며, 그 결실로 창의적인 실천적 방법들을 모색하여 기후행동과 다양한 사회적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신학화 2011년
성가소비녀회는 수도회 영성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2009년부터 관련 연구를 점진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설립자 탄생 100주년 기념 '감사의 해'인 2011년 6월, 《강생의 신학적 관점》을 발간하여 수도회 영성에 대한 조명을 심화하고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는 초석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 회원 연수와 연피정을 진행하며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명확히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영성적 쇄신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 생태 환경의 파괴가 심화되는 현실은 수도자들의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JPIC)에 대한 인식을 높였으며, 수도원의 울타리를 넘어 절박한 현장에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할 필요성을 증대시켰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성가소비녀회는 2013년 제15차 총회를 통해 “주님의 영이 우리를 다그치신다. 세상의 절박한 곳으로!”라는 주제를 기치로 ‘하느님 창조질서 회복 - 강생의 예언적 사명’을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의에 대한 실천으로 2015년 JPIC 사무국을 개설하고, 긴급한 시대적 과제 안에서 '하느님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강생의 예언자적 사명'을 실천하고자 국내외 네트워크와 연대하며 통합생태적 의식 전환의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 나갔습니다.
그 일환으로 타 수도회 회원들, 일반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실천할 수 있는 교육과 연대의 장으로 'JPIC 양성학교'와 '소비녀 JPIC'를 운영하였습니다.
[JPIC가 궁금하다면] 🔗 홈페이지 'JPIC' 메뉴 바로가기
성가소비녀회는 제15차 총회에서 결정된 의안인 '사람·환경·자연을 살리는 생명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통합생태 교육과 실천을 전개해 왔습니다.
생태 연구와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도창동, 용문, 배론, 석현리, 관구본원 등에 땅을 살리는 순환 농업과 생명 친화적 삶의 양식을 살아가는 생태적 대안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흐름은 2016년 제16차 총회를 계기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나아가 프리마켓 '꿈'과 '숨' 프로젝트 등의 사도직을 통하여, 친환경·제로웨이스트 물품을 선보이고 다양한 활동가들과 연대하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 정의롭고 건강한 생태 문화를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태 사도직이 다양하게 전개됨에 따라 모든 공동체가 생태적 삶의 양식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 [제16차 총회 - 2017년]
• 주제: "주님의 영이 우리를 다그치신다. 세상의 절박한 곳으로!
- 예언적 양성에로의 부르심 JPIC"
• 결정된 의안:
1. 예언적 증거의 삶을 위해 원형구조로 이동한다.
2. 생태 사도직에 집중한다.
3. 사도직을 재편한다.(확장, 축소, 전환)
4. 관상적이고 예언적인 선교사를 양성한다.
펼치는 지역사회연대 활동ㆍ시민·활동가 연대 2020년
📌 [제17차 총회 - 2020년] • 주제: "부서지고 상처 난 내 백성을 회복하여라." • 결정된 의안: 통합 생태적 삶으로 대전환한다.
성가소비녀회는 2020년 제17차 총회에서 상처 입은 모든 생명을 돌보고 회복시킬 것을 다짐하며, '통합생태적 삶으로 대전환한다'를 결의하였습니다. 이에 모든 피조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감수성과 우주적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수도회의 울타리를 넘어 공동선을 이루어가는 연대의 관계망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후위기와 생태 붕괴, 사회적 참사의 현장에 동참하여 취약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피조물 보호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정책 실천 등 평화·인권·환경 운동에 적극 연대하여 생명의 그물망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성가소비녀회의 태동과 설립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